책소개
≪허정집≫은 2권 1책 목판본으로, 허정 스님이 입적하기 한 해 전인 1732년(영조 8) 묘향산 보현사(普賢寺)에서 개간(開刊)했다. 권두에 김정대(金鼎大)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는 저자의 발문과 간기(刊記)가 있다.
이 책의 말미에서 문집 간행과 관련한 저간의 사정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허정집≫은 틈틈이 적은 게송을 묶은 것이다. 허정 스님은 제자들의 강권에 의해 제자들의 수행을 인도할 목적으로 이 책을 인간(印刊)하게 되었으나, 산중에서만 돌려보도록 했다. 본인 스스로가 밝히는 문집 간행의 목적이 이러한 만큼 이는 조선조 불교계를 관통하는 의식이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학을 통한 득도(得度)의 달성은 불가 시문학의 전반적인 목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허정집≫ 상권에는 264편 299수의 시가, 하권에는 31편의 문이 실려 있다. 특히 하권에는 <안국사기(安國寺記)>·<청룡사기(靑龍寺記)> 등 8편의 기(記)와 <백화당형주대사비명(白華堂浻珠大師碑銘)>·<영허대사비명(靈虛大師碑銘)> 등 5편의 고승의 행장과 사찰 중수를 위한 권선문(勸善文), 부모·사승(師僧) 등을 위한 천혼소(薦魂疏), <화엄경후발(華嚴經後跋)>·<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속향산록(續香山錄)>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중 산록(山錄)들은 자연 형태와 풍물을 잘 묘사하고 있는데, 특히 <금강산기>에는 내·외금강의 신비로운 모습이 화려하게 묘사되고 있다. 직접 답사하여 일반인에게는 알려져 있지 않은 동천(洞天)·봉만(峰巒)·계곡·폭포·암석 등의 형태와 명칭 등을 세세하게 그려내었다. 간혹 중간마다 나오는 대찰들의 형태는 물론 환경과 역사를 예의 박식함으로 기록했다.
김정대는 서문에서 허정 스님의 시는 “체법이 유염(柔艶)하며 태도가 평담(平淡)하”고, “청원(淸圓)하지 않는 게 없”다고 했으며, <비문>을 쓴 이중협은 “거친 듯하나 군(君)·친(親)·사(師)·붕(朋)에 뜻을 많이 두었”다고 했다. 종합하면, 허정 스님의 시는 다양한 시체를 실험하면서도 그 내용은 담박하며, 모나지 않은 듯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정제되지 않은 듯한 느낌을 주는 시라는 것이다. 이런 평가는 ≪허정집≫의 전체적인 성격을 잘 드러내 준다. 평이한 시어를 통해 쉽게 다가서면서도 분명한 요지를 담고 있는 시, 그것은 허정 스님이 가진 선사로서의 향기와도 맥이 닿아 있다.
200자평
빼어난 시승(詩僧)으로도 이름이 높았던 허정 법종의 문집이다. 그의 시는 다른 선시에 비해 읽기 쉽다. 담박하면서도 적절한 시어를 배치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허정집≫에서 그의 정신세계를 가장 잘 드러내는 109편의 시문을 골라 실었다. 바쁜 일상에 매몰되어 자신을 잃어 가는 현대인의 마음을 맑은 죽비 소리처럼 일깨울 것이다.
지은이
법종(法宗, 1670∼1733)은 조선 영조 때의 승려. 사간원(司諫院) 대사간(大司諫)을 지낸 이중협(李重協, 1681∼?)이 지은 <허정당법종대사비명(虛靜堂法宗大師碑銘)>에 따르면, 스님의 호는 허정(虛靜)이며 완산 전씨(完山全氏)로 관서 땅 삼화(三和) 사람이다. 어머니 노(盧)씨는 용이 강림하는 꿈을 꾸고 경술년(庚戌年) 초파일(浴佛日)에 임신을 하여 스님을 낳았는데, 타고난 바탕이 비범하였다. 12세에 옥잠장로(玉岑長老)를 찾아가 머리를 깎고 출가했다. 출가 이유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길이 없으나, 그 무렵 개인의 신변에 큰 변화가 생겼음을 추측할 수 있다. 그 뒤 수행을 거듭하여 ‘원돈(圓頓)의 법계(法界)가 너 자신에게 있다(今在汝矣)’고 하는 화엄의 원돈법계설(圓頓法界說)을 공부하다가 크게 깨달았다. 다시 묘향산으로 들어가 월저도안(月渚道安, 1638 ∼1715)을 참배하고 장경(藏經)을 두루 공부하였는데, 이때 나이 스무 살 남짓이었다. 그 뒤 드디어 월저 스님의 고족제자인 설암추붕(雪巖秋鵬, 1651∼1706)을 따라 현지(玄旨)를 듣고 인가(認可)를 받음으로써 그의 법을 이었다. 설암 스님은 월저 스님으로부터 청허(淸虛)→편양(鞭羊)→풍담(楓潭)으로 이어지는 의발을 전수받은 선사였다. 특히 ≪선원제전집도서과평(禪源諸詮集都序科評)≫(2권)·≪설암잡저(雪巖雜著)≫(3권 3책)·≪설암난고(雪巖亂藁)≫(2권 1책)을 남기는 등 당대 대표적인 선객의 한 분이셨다. 그 뒤 진상암(眞常庵)·내원암(內院庵)·조원암(祖院庵) 등 여러 절에 머물렀다. 그때마다 법을 배우고자 하는 승려들에게 낮에는 경전을 강의하고 밤에는 참선을 지도했다. 1708년(숙종 34) 구월산으로 초청되어갈 때, 그를 따르는 문도가 항시 100여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당시의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다. 그해에 다시 묘향산으로 돌아와 계축년 4월 17일, 남정사(南精舍)에서 입적하시니 세속 나이 64세요, 법랍(法臘) 52세였다. 화장을 할 즈음, 상서로운 빛이 하늘을 밝혔는데 영골(靈骨) 1편(片)과 사리 3과(顆)가 나와 묘향산과 구월산 그리고 해남 대둔사에 부도(浮屠)를 세워 봉안했다.
옮긴이
배규범은 1998년 문학박사 학위(<임란기 불가문학 연구>)를 받은 이래, 한국학 및 불가 한문학 연구에 전력하고 있다. 한자와 불교를 공통 범주로 한 ‘동아시아 문학론’ 수립을 학문적 목표로 삼아, 그간 한국학대학원 부설 청계서당(淸溪書堂) 및 국사편찬위원회 초서 과정을 수료했으며, 수당(守堂) 조기대(趙基大) 선생께 사사했다. 경희대학교 국제교육원에서 지난 10여 년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국어 및 한자 강의를 진행했으며, (사)한국한자한문능력개발원의 한자능력검정시험 출제 및 검토 위원으로 재임 중이다. 2002년부터 2008년까지 학술진흥재단의 고전 번역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2000년부터는 국사편찬위원회의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고·순종≫ 교열 및 교감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경희대(학진연구교수), 동국대(학진연구교수), 북경 대외경제무역대학(KF객원교수)을 거쳐 현재 중국 북경공업대학 한국어과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중국 학생들에게 한국어 및 한국 문화를 강의하고 있다. 해외에서 우리의 말과 문화에 대한 보다 심도 깊은 연구와 전파라는 새로운 뜻을 세우고 활동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불가 잡체시 연구≫, ≪불가 시문학론≫, ≪조선조 불가문학 연구≫, ≪사명당≫, ≪한자로 배우는 한국어≫, ≪요모조모 한국 읽기≫, ≪외국인을 위한 한국 고전문학사≫, ≪속담으로 배우는 한국 문화 300≫ 등이 있고, 역저로는 ≪역주 선가귀감≫, ≪한글세대를 위한 명심보감≫, ≪사명당집≫, ≪허정집≫, ≪허응당집≫, ≪청허당집≫, ≪무의자 시집≫, ≪역주 창랑시화≫, ≪정관집≫, ≪초의시고≫ 등이 있다.
차례
산중사 山中辭
유거사 幽居辭
한가롭게 읊다 閑詠
월운대사에게 贈雲月大師
회포를 읊으며 내 뜻을 말하다 咏懷言志
초당 草堂
자경 自警
맑은 밤 淸夜
유거 幽居
물외 物外
산에서 살며 山居
고요한 밤 夜靜
아파 신음하다 病吟
백운암 白雲庵
은선대 隱仙臺
금강산 金剛山
참의 권중경의 시운을 빌려 次權參議重經韻
가야산 해인사 일주문의 시운을 빌려 次伽耶山海印寺一柱門韻
금화산 징광사 金華山 澄光寺
백운산인에게 示白雲山人
호남으로 가는 환몽 스님을 전송하며 送幻夢之湖南
문촌 유 처사의 시운을 빌려 次文村柳處士韻
계율을 지키며 護戒
<봄 골짝에 핀 한 송이 꽃> 시운을 빌려 次春谷一花韻
진사 백대문, 처사 황지리와 함께 백사장을 노닐다 지은 시운을 빌려 白進士大文黃處土地理同遊白沙場韻次
운을 빌려 청옥 수좌에게 보이다 次示淸玉首座
운을 빌려 육공 수좌에게 보이다 次示六空首座
조급하게 배우려는 자에게 잡사와 백공을 훈계하다 示學卞雜事百工故誡示
아파 신음하며 病吟
고향 생각 思鄕
송광사 무용 스님의 시운을 빌려 松廣寺無用大師韻次
월저 스님의 시운을 빌려 敬次月渚大和尙韻
신선을 찾다가 길을 잃고서 訪仙失路
운을 빌려 의진 수좌에게 주다 次示義眞首座
운을 빌려 백운 스님을 전송하다 次送白雲子
운을 빌려 내원의 성곡민기 스님에게 주다 次示內院城谷敏機大師
중악에서 삼남으로 내려가 오래도록 오지 않는 이를 그리워하며 憶中岳下三南久不來
운을 빌려 설잠 스님에게 부치다 次寄雪岑
운을 빌려 고향 사람인 운서 거사에게 드리다 次贈同鄕人雲瑞居士
대공각민 스님에게 示大工覺敏道人
은자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訪隱不遇
운을 빌려 축림 스님을 전송하며 次送竺林
가을 산에 혼자 살며 秋山獨居
운을 빌려 금강산 도일 수좌에게 보이다 次示金剛山道一首座
해문도인에게 示海文道人
고향 생각 望鄕
한양 漢陽
모은 스님과 헤어지며 別慕隱
운을 빌려 식암 스님에게 부치다 次寄息巖
사시사의 운을 빌려 次四時詞
묘향산 구름집 香山雲舍
한식 寒食
능파희세 스님에게 寄綾坡希世子
자탄 自歎
사군 김일경의 시운을 빌려 次金使君一鏡韻
운을 빌려 수이 스님에게 부치다 次寄守夷
능파희세 스님을 전송하며 送綾坡希世子
고요히 살며 靜居
깊은 산골 洞深
가을 풍경 秋景
삼가 설암 스님의 시운을 빌려 敬次雪巖和尙韻
하늘 天
땅 地
태양 日
달 月
바람 風
구름 雲
소나무 松
노송나무 檜
묘향산 보현사 香山普賢寺
설암 스님을 애도하며 悼雪巖和尙
삼가 설암 스님의 시운을 빌려 敬次雪巖和尙韻
묘향산 상운암 題香山上雲庵
장난삼아 행각승에게 지어주다 戱贈行脚僧
옛 시의 운을 빌려 次古韻
눈 雪
장난삼아 허영 스님에게 戱示虛影
창파취원 스님에게 贈滄波子翠遠大師
제야에 화초 가꾸기를 권면하는 게송 分歲造花草勸偈
만경대에 올라 登萬景臺
어머니 생신 날 가르침을 생각하며 生辰記慈母敎訓
봄눈 春雪
양관체 ―산 속의 묘한 향내를 찬양하다 陽關體 讚山中妙香
옥련환체 ―같은 문도를 권면하다 玉連環體 勸同徒
측입체 仄入體
요체 拗體
일이언체 ―안곡 스님에게 一二言體 寄安谷
수시체 數詩體
건제체 建除體
자응 스님의 시운을 빌려 次慈應韻
월저 스님을 애도하며 悼月渚大和尙
객지살이 회포를 쓰다 旅窓書懷
제석 除夕
초당 草堂
만월 스님에게 부치다 寄滿月
고향에 머물며 산을 생각하다 滯鄕憶山
묘향산 香山
스스로를 위로하며 自遣
한식 寒食
고향을 그리며 望鄕
스님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서 訪師不遇
운을 빌려 무명도인에게 보이다 次示亡名道人
설암 스님을 추도하며 追悼雪巖和尙
운을 빌려 우암 스님에게 드리다 次贈牛巖
고향 산을 걱정하며 滯憂關山
임종게 臨終偈
착정기 鑿井記
유금강록 遊金剛錄
속향산록 續香山錄
해설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책속으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니 유유한 나그네요
절은 절이요 암자는 암자니 곳곳마다 집이로다.
멀고 멀며 굽고 굽어 험하디험한 길이요
열심히 열심히 바쁘고 바빠 걸음마다 지나가네.
山山水水悠悠客
寺寺庵庵處處家
迢迢曲曲嶇嶇路
役役匆匆步步過
-<장난삼아 행각승에게 지어주다(戱贈行脚僧)>
생전엔 그대가 내 그림자더니
죽은 뒤엔 내 그대 그림자로고.
그대와 나 원래 허깨비 상인걸
누가 참된 모습인지 알 수 없네.
껍질 벗고 초연히 경계 나서니
허공에 떨어져 자취가 없구나.
목인(木人)이 박자 맞춰 니나나 노래하고
석마(石馬)를 거꾸로 타고 절로 돌아가네.
절로 가는 곳 내 자취 잠겼으니
내 자취 잠긴 곳 바로 열반이도다.
참된 열반은 도대체 무엇이더냐.
그 무언가는 또 무엇이더냐.
生前渠於我之影
死後我於渠之影
渠我元來幻化形
不知誰是其眞影
脫殼超然出範圍
虛空撲落無蹤跡
木人唱拍哩囉囉
石馬倒騎歸自適
是自適處沒朕跡
沒朕跡處眞涅槃
眞涅槃者是甚麽
是甚麽者又甚麽
-<임종계(臨終偈)>